책상에 팔을 교차시켜 올려놓고, 그 위에 머리를 올려놓고 있던 리츠는 그리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살짝 벌리고 입던 입술 새로 한숨이 새어나온 것도 같았으나, 수업시간의 리츠에게 집중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이도 아무도 없었다. 리츠가 조금 더 몸을 움츠렸다.
태어난 직후의 사람들은 색을 볼 수 없다. 온 세상은 약간의 명도 차가 있는 무채색으로 보일 뿐이다. 그리고 사랑을 겪은 어른들은 말한다. 운명의 상대를 만나고, 아,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는구나, 를 깨닫게 되는 순간 색이 보인다고. 그 사람을 중심으로, 물가에 돌이 던져져 물결이 번지듯 색깔이 온 세상에 번져나가고 갖가지 물건에 색이 깃든다고. 사랑에 빠지기 전, 혹은 자각하기 전에는 ‘호’의 감정을 느낄 때 언뜻언뜻 보이는 것이 색이었다.
나도 그랬었지. 몸을 뒤척이며 리츠는 잠시 생각했다. 온 세상이 무채색으로 보였을 때가 있었다. 태양은 그저 눈이 멀 정도의 흰 색. 하늘은 조금 연한 회색, 구름은 그보다도 연해 사라질 것만 같은 흰색. 조금 더 시선을 내려 보이는 산은 짙은 회색이었고, 함께 걸어가는 길은 그보다는 연한 회색. 모든 것이 흑백의 만화처럼 보였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었다.
리츠가 슬며시 눈을 뜨고 다시 마오를 응시했다. 자줏빛의 머리카락, 노란빛의 헤어핀, 앞으로 고정되어 있는 초록빛의 눈동자. 조금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누구보다도 선명히 빛나는 색채. 봄을 닮아있는 색은 형광등 아래에서 더 반짝거리는 것만 같았다. 쉼 없이 움직이는 눈동자는 여름의 푸름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적당히 붉은 핏기가 도는 입술을 오물거리기도 하고, 살짝 그을린 미간을 좁히기도 하고, 까만색의 볼펜을 잡고 있던 손을 움직여 파란색의 형광펜을 꺼낸다. 마오에게는 절대 보이지 않을 색의 조화였다.
언제부터 이 색을 볼 수 있었더라. 거슬러 올라간다면 꽤 예전일 것이다. 친구가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을까, 조금은 지났을 때였을까. 해맑은 얼굴로 웃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나는 계속계속 릿쨩 옆에 있을 테니까!’를 외쳤던 날에 처음으로 색을 보았다. 저절로 알 수 있었다. 아, 마-군의 머리카락 색은 자주색이구나. 내가 물어서 꽂고 다니기 시작한 핀은 노란색이구나. 잘 어울리는데, 누군가 얘기해 준걸까. 가족들은 아마 아닐 테고, 문구점의 어른일까. 잠깐 보였다가 사라진 색이었다. 무채색으로 돌아온 세상에, 리츠는 처음으로 아쉬움을 느꼈다. 조금 더 눈에 담고 싶은 모습이었다.
간간히 보이던 마오의 색이 오롯이 제자리를 찾고 머무르게 된 것은 늦은 중학생 때였다. 유메노사키의 입시를 앞뒀을 때. 함께 하교를 하며 마오는 옛날과 똑같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어떤 여학생에게 고백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마음이 욱신거리고 걸음이 멈춰지려 했다.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다. 여지껏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눈은 깜박거렸고, 호흡이 신경이 쓰여 의식적으로 숨을 들이쉬고 뱉고. 겨우겨우, 느리게 걸음을 떼던 리츠는 물었다. 받았어? 덤덤한 듯 내뱉어진 물음에 마오는 리츠에게 고개를 돌리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대답이 나오는 그 짧은 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심장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귓가에, 마오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아니, 거절했어. 좋아하지 않으니까. 그저 있었던 일이었기에 말을 해준 거구나. 안심이 되어 눈물도 찔끔 날 것 같아 눈을 비비자, 눈썹을 팔(八)자로 늘어뜨리고 웃는 마오의 주변으로 색이 번져나갔다. 아.
아마, 잊을 수 없을 광경이 될 것이란 걸 리츠는 직감했다. 보라색과 남색이 뒤엉켜 있던 하늘과 하루의 끝이라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던 자줏빛 머리카락. 그 아래로 시선을 떨구면 살짝 찡그려진 자줏빛 눈썹과 눈에 가려졌다가 보이기 시작한, 둥글게 휘어진 짙은 초록의 눈동자. 추위에 발갛게 상기되어있는 뺨과 코끝, 살짝 드러난 짙은 목덜미와 검은색의 목도리. 마오의 따뜻한 숨이 내뱉는 입김은 하얗게 번지다가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멍청하게 서있지 말고 가자며 손을 비비던 마오의 손끝도 조금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색의 이름을 왜 갑자기 알게 되었는지 파악할 정신은 없었다. 눈이 트여버린 순간, 머릿속에 박힌 생각은 단 하나뿐이었다.
좋아하는구나. 평소보다 조금 빨리 뛰는 심장의 박동을 고스란히 느끼며, 리츠는 형한테 그런 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며 색이 보이지 않는 척 대화를 이어갔다. 그 날의 마오는, 그 날의 색은 여전했다.
처음을 떠올리던 리츠는 조용히 입꼬리만 올려 웃다가 이내 살짝 고개를 저었다. 난 그 때부터 완벽하게 시작한 건데, 마-군은 여전히 아무것도 몰라.
정말로, 자신은 힌트를 많이 주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색을 볼 수 있다고,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다는 마음을 확실히 티를 냈다고 생각했다. 리츠는 불과 어제 일어났던 일을 상기했다.
마오는 늘 아침에 깨우러 온다. 리츠는 마오를 위해서 잠들기 전에 내일 입을 옷이나 교복을 정리해서 침대 근처에 두고는 했다. 마오는 색을 볼 수 없으니까, 특히나 넥타이는 주의해서. 하지만 어제는 잠들기 전, 일부러 빨간색과 파란색의 넥타이 두 개를 어질렀다. 리츠의 눈에는 당연하게 다른 색이었지만, 마오는 명도의 차이만 있어 무엇이 맞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색이. 더구나 마오는 넥타이를 하고 다니지도 않으니 비교할 대상도 없었으니까. 생각이 정확히 들어맞아, 마오가 넥타이 두 개를 들고 어쩔 줄 몰라 할 때 리츠는 슬쩍 입을 열었다. 왼쪽이야. 순순히 답을 알려주니 마오는 곤란해 하던 얼굴을 피고 ‘아, 그래? 진작 말하지, 지각하게 생겼잖아!’하고 대답만 할 뿐 그 어떤 부가적인 질문을 하지 않았다. 색을 구별할 수 있느냐느니 어떻게 안 거냐느니, 그런 질문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마오는 마오 나름대로 어떤 이유를 만들어 납득한 것이겠지만, 리츠는 괜히 어제 반나절 동안 마오에게 불퉁하게 대했다(마오가 영문도 모르고 소꿉친구에게 불친절한 대우를 받아 마음을 졸인 것 같아 바로 원상복귀 했다). 아침이라 바빠서 그랬던 걸까. 곰곰이 생각하던 리츠는 고개를 저었다.
은근한 연분홍빛을 자랑하던 벚꽃은 떨어지고 새잎들이 돋아나던 시기. 노을이 져가는 하늘은 주홍빛과 붉은빛으로 얼룩덜룩했고, 그 위를 떠가는 구름도 그 색에 완전히 물들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별 차이를 구분할 수 없을 것 같은 하늘과, 그 색을 머금고 빛나던 마오의 눈과, 피어나던 새잎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눈에 들어오는 그 모습이 예뻐 말을 던졌다. 마-군, 눈이 예쁘게 물들었어. 저 잎들 같아. 그랬더니 뭐라고 했더라. 그래? 그런가-. 다시 생각해도 그런 덤덤한 대답이 돌아올 말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따지고 싶을 정도다. 벌떡 일어나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리츠는 잠에 빠지려 했다.
아, 그러고 보니 그런 일도 있었지. 상가 곳곳에 피어있는 꽃들이 만발한 게 또 예뻤다. 자줏빛, 분홍빛과 노란빛. 개학을 하고 얼마 안 되었던 때 같다. 마-군이랑 닮은 꽃들이네. 그리 말했더니 마오는 잘 모르겠다는 대답을 던졌다. 그러겠지, 색을 닮았다는 뜻이었으니까. 내 마-군은 눈치도 없지. 그런 점도 좋아하지만. 리츠는 가늘게 숨을 내쉬고 감은 눈에 힘을 주었다. 시야가 아득했다. 어떻게 해야 마오에게 자신이 색을 볼 수 있다고, 너로 인해서 볼 수 있게 되었다고 전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지. 일단 자고 나면 좋은 일이 일어나길 바라며, 리츠는 갑자기 쏟아지는 잠을 온 몸으로 받아들였다.
***
가끔은, 무언가 굉장히 상쾌한 날들이 있다. 몸이 상쾌하거나, 정신이 상쾌하거나. 유독 몸상태가 가뿐해서 연습을 더 해도 덜 지친다던가, 기분이 좋고 정신이 말끔하다던가. 오늘은 두 가지가 모두 해당되는 날이었다. 연습을 끝냈는데도 어제보다 지치지 않았다. 정신도 맑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모르는 사이 해는 넘어가버려 바깥은 어두웠다. 하긴, 겨울의 초입이니 해가 금방 떨어질만도 했다.
리츠는 바깥을 바라보며 물을 마시다 말고, 문득 유닛 멤버들을 돌아보며 질문을 던졌다. 색을 본 적 있어? 뜬금없는 질문에 땀을 닦던 이즈미는 얼굴을 구겼고, 츠카사는 그런 질문이 리츠의 입에서 나올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는지 달달한 간식으로 손을 뻗던 것을 멈췄으며, 아라시는 거울을 꺼내다가 리츠를 바라보았다. 그저 왕님만이 와하하 웃으며 작곡 활동을 이어나갈 뿐.
“갑자기 그건 왜 묻는데? 카사 군은 간식 그만 먹지 그래?”
“Lesson 후의 간식은 0 kcal입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리츠는 간식으로 티격거릴 것 같은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돌려 아라시를 바라보았다. 아라아라, 하며 웃던 아라시는 리츠의 시선을 느끼고는 금방 고개를 돌렸다. 아라시는 살풋 웃고 있었다.
“갑자기 그건 왜 묻는 거니, 리츠 쨩?”
“그냥.”
“리츠 쨩, 사랑을 하는 중인 걸까?”
아라시는 다 알고 있다는 말투로 볼을 감싸며 웃었다. 마-군이 낫쨩의 눈치 반만 있었어도 알아채고는 남았을 텐데. 마음 속을 맴도는 말을 꺼내지 않은 리츠는 그저 아라시를 바라보았다. 아라시는 나직이 웃다가 고개를 저었다.
“간간히, 본 적은 있지만. 완벽히 본 적은 없어.”
내가 보석 같은 보라색과 반짝거리는 금색이라는 건 알지만. 후후, 웃음으로 마무리를 지은 아라시는 레오에게 시선을 던졌다. 리츠의 시선이 아라시를 따라갔다. 레오는 등을 진 채로, 대꾸했다.
“나도 마찬가지-. 응, 루카땅의 미소를 볼 때는 가끔 보여! 인스피레이션이 솟을 때도!”
레오가 고개를 홱 돌렸다. 두둑, 소리가 들린 것만 같았다.
“리츠, 사랑을 하고 있는 건가! 사랑에 빠진 소년이라, 금방이라도 악상이 떠오를 것만 같아……!”
몸을 떨던 레오는 다시 악보에 집중하며 인스피레이션을 외쳤다. 그냥 질문한 것 뿐인데 사랑에 빠진 소년이 됐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손에 들고 있던 페트병을 내려놓으며 리츠는 만족스러운 얼굴의 이즈미에게 시선을 옮겼다. 이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짧고도 흔쾌한 대답이었다. 더 이상의 대답이 돌아올 것 같지 않아, 리츠는 결국 간식을 빼앗겨 울먹이는 얼굴로 옷을 챙기는 츠카사에게 마지막으로 시선을 던졌다. 츠카사는 교복을 단정히 챙기다가 고개를 저었다.
“본 적은 있습니다만……. 다시 회색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보았을 때도, 저를 본 적은 없기에 나루카미 선배처럼 제가 무슨 color를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네요.”
츠카사는 미련을 가진 얼굴로 이즈미의 손에 들린 포키를 바라보고는 한숨을 쉬고, 말을 이었다.
“스오우(朱桜)라는 이름에 맞을지, 살짝 걱정도 됩니다. 완전 파란색이면 저는……!”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는 듯 츠카사는 고개를 저었다. 속내는 어떨지 모르지만 자뭇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막내가 귀여워, 리츠는 짧게 웃고는 대답했다.
“스-쨩은 완전히 자줏빛. 붉은색이 많은 자줏빛이야.”
“그래, 눈은 보라색. 나루 군이랑 비슷한 컬러.”
이즈미가 말을 덧붙였다. 츠카사의 얼굴이 환하게 펴지는 걸 보고, 나이츠의 멤버가 모두 짤막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음표를 그려넣던 레오도 츠카사의 환한 얼굴을 보고 와하하하 웃음을 터뜨릴 지경이었다. 츠카사가 금방 얼굴을 붉혔다.
“놀리지 말아주십시오! 이 스오우 츠카사, 일생일대의 걱정이었단 말입니다!”
그런 걸로 일생일대를 거는 거야, 스오? 역시 넌 재밌어, 와하하하! Leader! 조금 파랄 수도 있지 뭐가 걱정이야? 하, 하지만, 세나 선배! 여울(瀬)이나 샘(泉)이면서 Red면 그것도 웃기지 않겠습니까? 하아? 지금 나한테 태클거는 거? 평소와 다름없는 분위기에 슬쩍 미소를 짓고 있자, 아라시가 조용히 리츠에게 눈짓했다. 리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라시는 방긋 미소 지으며 소란스러운 틈을 타 조용히 무언가를 말했다.
***
달이 밝았다. 보름인 듯 했다. 달빛은 노란 듯, 흰 듯, 어두운 밤길을 은은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조용한 골목은 두 사람의 발자국 소리만이 가득했다. 타박거리며 걷는 리츠의 머릿속에서 옆에서 말을 거는 마오의 목소리와 아라시의 목소리가 한데 엉켜 울리고 있었다. 오오가미 녀석은 작년쯤부터 색이 보인다더라. 영 눈치가 없는 상대한텐 직접적인 게 필요해. 어쩌다가 나온 얘기긴 한데, 신기하긴 하더라. 적당히 그런 화제가 나올 때 말이야. 나는 가끔 보이는 것 밖에 없으니까. 사랑에 빠진 남자아이도 세계의 보물이지. 직접적인, 그런 화제. 운이 따라준다고 해야 할 지, 마오가 얘기도 하고 있었다. 타이밍도 맞고, 머리도 몸도 상쾌한 편에, 아라시가 한 이야기도 있다. 리츠가 마오에게 시선을 던졌다. 저지를까? 말까? 잠시 고민을 하던 리츠의 눈에 볼을 긁적이며 웃는 마오가 들어왔다. 이제 슬슬 추워 지려나봐. 손으로 입김을 뿜었다. 예전처럼, 하얗게 번지다가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저지,
“마-군.”
르자.
생각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입이 먼저 움직였다. 리츠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 마오가 고개를 돌리고 눈썹을 위로 올렸다. 할 말이 있느냐는 몸짓에, 리츠는 마오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가 왜 넥타이를 구분할 수 있는 것 같아?”
“응?”
“넥타이를 어떻게 구분하는 것 같아?”
마오가 눈을 깜박였다.
“마-군 눈 보고 예쁘다고 했던 거나, 마-군이 꽃이랑 닮았다고 한 거나. 왜 그런 것 같아?”
마오는 여전히 대답 없이 눈을 깜박이고만 있었다. 얘가 갑자기 무슨 말을 하려나 싶겠지. 리츠는 마오의 생각을 짐작하며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마오를 바라보는 시선이, 몸이 떨리는 것도 같았다. 저지르자고 생각했을 때는 정말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고 덤덤하기까지 했는데. 여기까지 와서. 리츠가 보이지 않게 왼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마오가 느리게 입술을 움직이며 대답을 하기 전에, 리츠는 깊게 눈을 감았다가, 다시 숨을 크게 들이 쉬었다. 말을 이었다.
“좋아해. 마-군을.”
리츠가 눈을 떴다. 마오의 눈꺼풀과 입술이 동시에 움직임을 그쳤다. ……응? 영 모르겠다는 감탄사를 뱉으며 얼어붙은 것처럼 굳어버린 마오의 앞에 대고, 리츠는 확인사살을 하듯 또렷이 말했다.
“마-군을 좋아해. 그래서, 나는. 전부터 색이 보였고.”
리츠의 눈길이 마오의 머리카락에 닿았다.
“그래서, 나는, 마-군의 자주색 머리카락도 볼 수 있어.”
다음은, 그 밑.
“무대 위에서나, 가끔 날 볼 때 반짝반짝 하는 초록색 눈도 볼 수 있고.”
살짝 시선을 내리깔고.
“마-군은 모르겠지만, 마-군이랑 잘 어울리는 색의 빨간 유닛 의상을 입고 있는 것도 볼 수 있어.”
마오를 바라보고,
“다,”
결국은 웃어버렸다.
“마-군을 좋아하니까.”
고등학생처럼, 혹은 고등학생이 아닌 것처럼, 후련한 듯 리츠는 나긋이 웃음 지었다.
“좋아해.”
분명히 놀라는 게 먼저일 것 같은데,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머릿속이 하늘에서 내리는 눈처럼 아무것도 담지 않은 흰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쿵, 소리가 들렸다.
밤의 하늘은 어두웠다. 겨울의 초입이니까. 까맣게 칠해진 하늘은 눈을 감은 시야 같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무채색. 하늘에 가끔 보이는 별들은 희고, 조금은 파란빛으로도 빛나는 것 같다. 흐릿해서 잘은 모르겠지만.
심장 소리라는 걸 자각했다.
리츠의 머리칼은 밤과 같은 흑색이었다. 피부는, 창백하리만치 하얀 느낌이었다. 약간의 미미한 핏기가 도는 흰 빛. ‘창백하다’라는 표현을 글로만 배웠는데,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쿵, 다시 소리가 들렸다. 리츠의 말소리와 섞여서 들렸다.
눈은 붉은색이었다. 가늘게 웃음기를 띠고 있는 눈은 다정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달빛 때문인지 가로등 불빛 때문인지 반짝였다. 그 외의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다.
저런 얼굴을 보여준 적이 있었나.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부지런히 기억을 뒤질 정신 따위는 없었다.
리츠의 셔츠는 흰색, 내가 늘 입혀주던 조끼는 회색, 걸치고 있는 재킷은 파란색. 뒤의 담은 붉은색이 도는 회색, 흰색에 가까울 줄 알았던 가로등 불빛은 주홍색. 좋아함을 읊고 있는 리츠의 볼은, 이마나 살며시 쥐고 있는 주먹과는 다르게 약간은 붉은빛인 것도 같다.
쿵, 다시 소리가 들렸다. 리츠는 대답을 기다리는 듯 말이 없었다. 느긋한 미소는 변함이 없었다. 심장 소리라는 걸, 다시 자각했다.
심장이 이렇게 빨리 뛰던 때가 있었나.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은 때도 있었나. 슬퍼서가 아니라, 뭔지는 모르겠지만, 풍선이 공기를 가득 머금고 터지는 것 같은 느낌으로. 그리고, 색이 이렇게 번져서, 사라지지 않은 때가 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