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시작이었다. 연한 갈색의 눈을 굴리며 마시로는 시끄럽게 아침을 알리는 앵무새 쪽을 바라보았다. 히비키의 말버릇을 꽥꽥 외치는 모양새가 익숙하지만 시끄러움에는 적응하기 힘들었다. 히비키의 소란스러움과 고요함의 간극에 적응하기 힘든 것과 비슷한 맥락일까. 마시로는 새장을 툭툭 쳤다. 앵무새는 마시로의 손가락이 닿은 쪽으로 머리를 부빗거렸다. 동물에게 사랑받는 것은 여전했다.
“일어나셨습니까!”
부스스한 머리를 정리하며 방을 나서자 보이는 것은 머리를 틀어 올린 히비키였다. 사람은 아침에는 축 늘어진다는데, 히비키는 그런 모습도 찾을 수 없었다. 언제나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 마시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의 스케줄은 별로 없더군요. 자연스럽게 마시로의 스케줄을 읊은 히비키는 손에 들고 있던 접시를 식탁 위에 내려 놓았다. 식탁 앞에 앉아, 마시로는 얌전히 숟가락을 들었다.
“케첩으로 토끼 좀 그만 만들라니까요?”
“우후후, 아기 토끼씨를 위한 저만의 선물입니다만.”
“언제까지 아기 토끼인건데.”
유메노사키를 졸업하고 연예계에 종사를 하고 있어도 라빗츠로는 활동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1학년 모두가 컸다. 시노와 마시로는 170 후반 즈음을 웃돌았고, 텐마는 180을 살짝 넘기고 있었다. 팬시함과 귀여움으로 승부를 보라면 볼 수는 있겠지만 이미지 자체를 가지고 가기는 힘드니까.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니토는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로 모두를 바라보고, 모두는 아쉬워했지만 살짝 이미지를 바꾸고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아기 토끼는 적어도 2년 전의 일이다.
“제 안의 토모야 군은 언제나 아기 토끼니까요?”
“거대 토끼가 되어서 잡아먹는 수가 있어, 몬티 파이튼처럼.”
“우후후, 아직 그런 날은 한참 남은 것 같지만요.”
히비키는 가볍게 웃으며 자신의 접시를 내려놓았다. 케첩으로 그렸는데도 요란한 가면이 그려진 것을 보고 마시로는 고개를 내저으며 숟가락으로 계란 지단을 갈랐다.
“우왁?”
밥이 있어야 할 안은 계란 지단으로 가득했다. 어쩐지, 히비키의 눈길이 계속해서 자신의 손끝을 향하더라니. 변태가면! 오래된 애칭을 입에 담은 마시로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히비키를 바라보았다. 몸은 커도 행동은 여전히 귀여운 느낌이 남아있다. 히비키를 못 당해내는 걸 수도 있고. 히비키가 낄낄낄 웃더니 자신의 접시를 내밀었다. 이거로 드시죠, 토모야 군. 히비키의 손과 얼굴을 번갈아가며 바라보던 마시로가 조심스럽게 숟가락으로 계란 지단을 갈랐다. 그와중에 케첩으로 만들어진 가면은 건드리지 않아 히비키는 조금 놀랐고, 마시로는 하얀 쌀알이 가득한 안에 안도했다.
평범한 아침이었다. 마시로는 밥을 다 먹은 뒤에 스케줄을 나갈 준비를 했고, 새로 준비하기 시작한 연극의 리딩 스케줄만 느긋하게 잡혀있는 히비키는 먹은 것을 정리했다. 마시로의 스케줄이 느긋하고 히비키의 스케줄이 바쁘다면 반대였겠지. 마시로는 급하게 나왔고, 자신을 배웅하는 히비키에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다녀올게. 돌아올 곳, 을 확실히 하는 말은 싫어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히비키 또한 웃으며, 자신과 눈높이가 비슷한 청년에게 대꾸했다. 다녀오세요. 지각하면 안 돼! 히비키가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니겠지만, 다 들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마시로는 집 밖을 나섰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히비키는 홀로 생각했다. 이것이, 행복이라면 행복이라고.
히비키 와타루는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다. 함께 살기까지 하는 연인임에도 그의 행동을 예측하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마시로는 주변을 둘러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은 틀림없는 공항이었다.
“제발, 해외로 떠나면 말 좀 해줄래요?”
“오야? 여행을 간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해외라고는 안 했잖아!”
누가 들을세라 조용히 소리친 마시로가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히비키는 내일 여행을 간다고 말을 하긴 했다. 토모야 군은 내일부터 오프지요. 저도 운 좋게 며칠 동안은 쉴 수 있으니 여행을 가도록 합시다! 그리 말하며 방긋 웃었던 히비키의 얼굴을 잊을 수는 없었다. 명실상부 그는 마시로의 여신님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단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마시로는 오늘 스케줄이 끝나고 돌아오며 생각했다. 어디로 여행을 갈지 이야기해보고, 가면 무엇이 있고 어디를 돌아다녀야 할지 생각해봐야겠다고.
그런데 그게 다 필요가 없어졌다니! 집에 돌아오자마자, 선글라스를 끼고 현관에 앉아있던 히비키는 이미 준비한 거대한 캐리어 두 개를 양 손에 척척 들고 마시로를 밀어내며 문 밖으로 나갔다. 자, 갑시다! 말문이 막혀 경쾌하게 말하는 히비키에게 아무런 대답도 못해주고 있으려니 택시가 왔고, 히비키는 왈츠를 추는 냥 부드러운 발걸음으로 택시를 잡아 마시로를 밀어 넣었다. 어디선가 등장한 모자를 마시로에게 씌운 히비키는 공항을 외치며, 또 어디선가 등장한 마시로의 여권을 손에 쥐여 주기까지 했다.
예상 못 할 사람이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예상하지 못할 줄은. 마시로가 허탈하게 웃으며 히비키를 힐끔거렸다. 히비키는 꽤나 들떠보였다. 놀라움을 주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니, 자신의 반응에 들뜬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 생각하며 마시로는 결국은, 조금 웃을 수밖에 없었다. 사랑과 놀라움을 사랑하는 특별한 사람. 평범한 사람의 옆에 잡혀있는, 알 수 없는 사람. 이 상황 자체가 나쁘다는 건 아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오프, 휴가였고 히비키도 며칠 간 휴가인 건 전례가 없는 일이었으니까. 히비키가 이것저것 생각하고 깜짝 놀라게 할 생각을 궁리했다면 그건 그거 나름대로 부장이(몇 년이 지나도 잘 떨어지지 않는 속입버릇이었다.) 귀여우니까. 마음씨 좋은 내가 봐줘야지, 이 다음에 뭐할지 알 수 없는 사람을. 그리 생각하며 마시로는 여권을 만지작거렸고, 히비키는 그런 마시로를 힐끔거리며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문득 잠에서 깨었다. 이젠 볼 수 없는, 사랑하는 이들이 꿈에서 나왔다. 조금은 떨리는 숨을 내뱉는 코에 대고 손을 모았다. 커다랗다면 커다란 손의 공동(空洞) 안에서 히비키는 숨을 골랐다. 옆에서는 사랑스러운 이가 잠들어있었다. 엷은 색채의 갈색 머리가 이리저리 흐트러져있다. 체격은 자신만큼이나 컸는데도 왜 아직도 얼굴은 어리게만 보일까. 이 얘기를 꺼내면 싫어하겠지만. 히비키는 나직이 웃으며 마시로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고는 머리 밑으로 팔을 받쳤다.
부모님이 나왔다. 온화한 미소를 짓고 계셨다. 꿈속의 자신은 아직 어렸던 것도 같다. 5살의 히비키 와타루는 은실로 자아낸 머리카락을 짧게 기르고 있었다. 어깨에 닿지 않는 짧은 단발, 차분하게 반짝이는 보랏빛 눈동자. 꿈속에서의 자신과 연로하신 부모님은 행복해보였다. 화면이 바뀌었다. 12살의 히비키 와타루는 머리카락 한 쪽을 땋았다. 부모님은 여지껏 자신을 사랑해주었다. 온화한 미소는 미동도 없었다. 꿈이었기에 가능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인형처럼 멈춰서 웃을 수는 없었지만. 29살의 히비키 와타루는 그곳에 멍청히 서서 자라나는 히비키 와타루를 지켜보았다. 이해할 수 없는 재능을 존중해준 부모님의 손길을, 머리는 기억하고 있었기에 커다란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기도 했다. 16살의 히비키 와타루는 두 갈래의 땋은 머리를 가지고 있었고, 18살의 히비키 와타루는 그저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가지고 있었다. 자라나는 자신을 보며, 부모님에게로 시선을 돌리자 가까워진 그들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랑하는 우리 와타루. 부모님의 입은 그렇게 뻐끔거렸던 것도 같다. 어렸을 때보다 조금은 작아진 손으로 팔을 뻗어 29살의 히비키 와타루를 쓰다듬어 주기도 했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말라버려서일지도 몰랐다.
현실 속의 히비키는 마른세수를 하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마시로가 앓는 소리를 내며 뒤척이다가 눈을 떴다. 초점이 맞지 않는 눈이 찾아 담는 것은 히비키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셨기에, 마시로와 만나기 시작했다. 당신을 지탱해주던 사람들이 없어졌는데, 내가 마음이 편하겠어? 언제 사라질지 모르겠다고, 당신! 무작정 들이닥치며 허둥대었던 작은 토끼는 히비키의 표정을 읽은 것인지 무엇인지, 팔을 뻗어 그를 안았다. 오야, 왜 그러시나요. 그냥, 당신 이상해 보여서요. 물음을 던지자 마시로는 잠에 취한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여기 있는 건, 여전한 당신의 히비키 와타루입니다만. 적막한 기류를 굳이 깨고 싶지는 않아, 히비키는 밝은 톤이지만 나직이 말을 받았다. 그래, 나의 히비키 와타루. 마시로는 히비키를 더욱 안고 눈을 감을 뿐이었다. 히비키가 손을 올려 마시로의 팔을 잡았다. 이젠 볼 수 없는 사람들의 온기가, 아득한 기분이 들며 잠이 왔다.
D열의 23번. 로열석이라고 부르라면 그렇게 부를 수도 있는 자리에서, 마시로는 눈을 크게 떴다. 변함없는 히비키 와타루였다. 연기를 하면 무섭도록 배역에 집중하는 사람. 천재 연기자 히비키 와타루가 아니라, 정말 하나의 인물을 그대로 구현해내는 듯한 억양과, 장단과, 몸짓과 표정. 장난스러움을 쏙 뺀 모습에 마시로는 언제나처럼 감탄을 했다. 조명 밑에서의 당신은 언제나 반짝반짝 빛나는구나. 예전이랑 똑같애. 새삼스러운 생각을 하며, 마시로는 살짝 웃었다.
무대에서의 당신은 반짝거려요. 정말,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오야, 그런가요? 이상하네요.
뭐가?
평범하기 그지없는 토모야 군은 언제나 빛나고 있으니 말입니다? 신기한 일이지요!
히비키가 집을 비웠다. 연극의 연습이 있는 날이었다. 오늘은 마시로 혼자만의 휴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기에는 찔려서. 마시로는 간만에 청소기를 돌리며 집 안 곳곳을 정리했다.
히비키의 집 안에 자신의 물건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몇 년을 같이 있었으니 당연한 일임에도, 뭔가 낯선 기분이 들어 마시로는 멋쩍게 웃었다. 처음에는 칫솔이나 속옷, 옷가지 몇 개의 기본적인 물건들이 전부였는데. 지금은 마시로만의 머그컵이 있었고, 마시로를 닮은 인형들이 놓여있기도 했고, 옷가지도 꽤나 많이 늘어져 있었다. 마시로는 얌전히 소파에 앉아 자신을 닮은 인형을 들여다보았다.
불안하다고 느꼈다. 모두의 사랑을 받는 것 같지만, 그 겨울에 보았던 히비키 와타루는 너무나도 불안정한 사람처럼 보였다.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천재. 신에게 사랑받았으나 인간에게서는, 그만큼의 사랑을 받았을지 걱정되는. 혼자 영화를 보는 게 휴일의 소일거리인. 우주를 떠다니는 듯 했던 히비키 와타루는 정말로 떠올라가고 있었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것을 사랑으로 잡은 것이 그의 부모님, 이라고 생각했다. 관심으로 그를 잡은 것은 옛날의 학생회장이었고. 그 중 한 줄이 끊어진다면, 지금처럼 제대로 있을까. 또 다른 줄도 끊어질까봐 걱정되는데. 그런 걱정에서 시작한 동거였을 뿐이었다. 날아가 버리지 않게, 부모님에 필적하는 사랑을 주지는 못하겠지만 그를 잡아둘 수 있도록. 옆에서 성장하고 커가면서.
처음에는 그저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더라. 그저 문득, 좋아한다고 깨달았고, 고민을 하면서도 고백을 했던 게 전부였다. 히비키는 마시로의 고백을 받아들였고. 그렇게 연인이 되었고, 조금 더 솔직하게 좋아한다고 말을 했고, 답을 들었고. 과분할 정도의 사랑을 받기도 하고.
마시로는 소파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잔잔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지만, 눈썹은 살짝 찡그려져 있었다. 정말, 과분할 정도의 사랑이지. 처음엔 예상도 못했는걸, 사랑이 넘치는 히비키 와타루의 사랑을 내가 고스란히 받아낼 수 있다는 것 자체를.
빨리 오면 좋겠다. 그리 생각하며, 마시로는 히비키가 돌아온다면 어떤 포즈를 하고 집에서 반겨줘야 할 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기행에 기행으로 반응해주면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분명히 좋아할 거야.
“토모야 군은, 연극은 하지 않는 건가요?”
“응?”
히비키 앞으로 들어온 새로운 연극 대본들을 함께 훑고 있었다. 히비키는 모처럼 안경을 걸치고 찬찬히 대본을 보고 있었고, 마시로는 그런 히비키를 힐끔거리기도 하면서 제목이 당기는 몇 개를 들춰보고 있었고. 히비키가 고개를 돌려 하는 말의 맥락을 잠시 이해하지 못하던 마시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요. 일단, 대본이 나한테 들어오는 것도 없고.”
“추천하려면 추천할 수는 있습니다만, 저도 양심이라는 게 있는지라.”
“뒷말은 좀 하지 말아줄래?”
마시로가 눈을 부라렸다. 히비키가 낄낄 웃음을 남기자, 마시로는 눈을 굴리다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연극은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그런가요.”
“그러네요.”
짤막한 대화가 오가고, 다시 소파는 정적이 흘렀다. 초침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정적이었다. 어색하지는 않은 정적이었다.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소파에 팔을 걸치고 턱을 괸 마시로가 짧게 하품했다.
“그렇담, 토모야 군.”
히비키가 안경을 벗으며 고개를 돌렸다. 히비키가 어렴풋하게 웃었다. 마시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인지, 예전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연극부를 선택하지 않겠군요?”
그래서 예전같은 얼굴이었나. 이상한 거에 겁이 많다니까. 마시로는 무슨 얘기를 하냐는 듯 얼굴을 구기다가 고개를 저었다. 마시로가 히비키를 빤히 바라보았다. 보라색의 시선이 약간은 일렁이는 것도 같았다. 올곧게 뻗어있던 시선을 거두어들이고, 마시로는 대꾸했다.
“들어갈 거예요. 거기에 부장이 있었으니까.”
“…….”
오랜만에 듣는 호칭에 히비키는 눈을 깜박였다.
“평범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히 하고 있지만, 노래하는 걸로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뿐이고. 당신의 뒤를 쫓아가면서 잡는 것보다, 당신 옆자리에서 당신만큼 높아져서 잡을 수도 있잖아?”
굳이 물어보지 않은 것까지 덧붙인 것은 아마도, 히비키를 안도시켜주기 위함이었을 지도 몰랐다. 히비키는 눈을 끔벅거리다가 우후후, 평소처럼 웃었다. 저처럼 클 생각을 하다니, 아직 갈 길이 한참 멀군요! 아악, 그건 나도 아니까! 오래도록 오셔야 겠습니다? 말 안 해도 오래도록 쫓아갈 거거든? 퉁명스레 말하며 대본을 팔락거리는 마시로를 바라보던 히비키는, 웃음을 얼굴 위로 올렸다.
느긋하고 바쁜 아침이었다. 히비키의 공연이 오후 2시부터 있는 아침이었다. 늦어도 11시까지는 출근을 해야 했으니, 바쁠 수밖에 없는 아침이었는데도 묘하게 여유로운 느낌이 있었다. 마시로는 그릇을 치우고 헤어 드라이기를 집었다. 이미 헤어 드라이기 하나는 히비키의 손에, 하나는 머리카락에 들려있었지만 저 놈의 긴 장발은 두 대의 드라이기로는 부족했으니까. 여전히 머리카락을 움직이는 스킬은 터득하지 못한 마시로는 얌전히 코드를 꼽고 드라이기를 켠 뒤에 히비키의 머리를 함께 말려주기 시작했다.
“토모야 군은 스케줄이 오후부터던가요?”
“응, 5시. 1시에 나가면 돼.”
일상의 대화를 하며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종종 있는 일이었다. 마시로는 누군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따뜻한 바람과 함께 만져준다면 잠이 왔는데, 히비키는 머리카락이 길어서인지 아닌지 말짱한 얼굴로 이것저것 건들고 있었다. 히비키의 머리카락은 마냥 가늘지도 두껍지도 않았다. 관리를 하는 모습은 잘 보지 못했는데, 여전히 찰랑거리고 긴 머리카락이 경이롭기도 했다.
마시로와 히비키 사이에 대화가 오갔다. 별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다. 저녁은 함께 먹을 수 있는지, 함께 먹을 수 있다면 몇 시인지. 저녁을 집에서 함께 먹을 수는 없어, 9시 즈음 방송국 근처에서 보기로 약속을 한다. 마시로의 손가락 사이로 달빛이 흘러내렸다.
히비키의 머리카락은 만지면 감촉이 좋았다. 잠에 먼저 깨었을 때도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머리카락을 만져본 적이 있다. 엉키지도 않고 잘도 흘러내리네. 실없는 생각을 하며 눈을 굴리던 마시로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전부터 머리 안 땋네요?”
“오야?”
“저 1학년일 때는 머리 한 쪽 땋고 있었잖아요.”
“이제서야 물어보는 건가요! 아아, 사랑의 부재입니다……!”
“타이밍을 놓친 것 뿐이라고?”
과장된 몸짓의 탄식에 토모야가 응수했다. 히비키가 나직이 웃었다. 앞에 놓인 거울로, 히비키는 마시로를 살폈다.
“이제는 땋지 않아도 된답니다.”
“응?”
“땋을 이유가 사라졌거든요!”
경쾌하게 말했지만, 마시로는 이해하지 못한 듯 얼굴을 찡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히비키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남으로부터 자신을 감추기 위해 머리를 늘 땋았다고는, 굳이 말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 머리카락을, 다시 땋았다.
“이런 이야기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왼쪽으로 늘어져있는 땋은 머리카락이 나풀거렸다. 와타루의 눈은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를 잡아주러 와서는 먼저 끊어지는 게 어디 있지요? 줄이 끊어진 풍선은 날아갈 수밖에 없답니다, 토모야 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