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설마설마 했는데,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하던가. 몸의 신호가 없어 불안하기는 했지만, 믿었다. 항상 관계를 가질 때는 피임을 했으니까. 괜찮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마오는 제 손에 들린 테스트기의 떠있는 두 개의 줄을 보고 손을 떨었다. 혼란스러웠다. 기쁜 건가? 슬픈 건가? 괴로운 건가? 싫은 건가?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감정들이 몰아쳤다. ……아이? 나, 활동 중인데. 아이돌인데. 트릭스타 멤버들한테는 뭐라고 해야 하지. 아니, 그보다.
“리츠.”
리츠한테는. ……어떡하지? 울컥, 눈물이 났다. 싫어하면 어쩌지. 얼굴을 찡그리고, 아이 같은 건 싫다고 하면 어쩌지. 나를 싫다는 눈으로, 바라보면 어쩌지. 리츠와의 아이가 생겼다는 게 싫은 건 아니었다. 그저 걱정되는 것은 리츠의 반응과, ……표정과 말과, 대중의 반응. 나를 싫어하게 되면, 나는. 마오가 입술을 깨물었다. 손으로 얼굴을 감싼 마오가 가는 한숨을 내뱉었다. 무서워. 미움 받는 건 싫어……. 나지막이 중얼거린 마오가 입 안의 여린 살을 꾹 깨물었다.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까.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복잡했다.
***
스케줄에 집중이 되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나마 활동이 끝나가고 있어 스케줄이 적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고, 리츠는 활동이 막 시작되어 스케줄이 많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적어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은 있었으니까.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은 있었으니까. 늦을 것 같으니 먼저 자라는 리츠의 연락을 무시하고, 마오는 작은 소파 위에 앉아 불안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언제 실수한 거지. 기억을 곱씹어도 특별히 피임을 미뤘다던가, 한 기억은 없었다. 100%가 아닌 건 알았지만, 그래도. 무릎을 세워 앉으려다가 자세를 바꾼 마오가 다시 한 숨을 내쉬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꼬던 마오의 귀에 도어락이 해제되는 소리가 들렸다. 시간은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리츠.”
리츠가 눈을 깜박이다가 웃었다. 나 기다렸어, 마-쨩? 마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작게 웃은 리츠가 짐을 내려두고 걸어와 마오를 안았다. 마-쨩, 뭐 할 말 있지. 예민하게 상태를 알아차리는 리츠를 보니 더 마음이 불안했다. 이렇게 대해주는데, 갑자기 눈빛이 바뀌면 어쩌지. 리츠의 품에서 고개를 끄덕인 마오가 눈을 굴렸다. 그럼, 씻고 나올 테니까. 느긋하게 말을 이은 리츠가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자리를 떴다. 유유히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씻을 걸 챙겨 화장실로 들어가는 리츠를 보던 마오가 거실-이라고 부르기엔 작았지만-의 불을 끄고 방으로 들어갔다. 역시, 쪼그리고 앉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괜히 불안해서, 마오는 손을 만지작거리다가 침대에 주저앉았다. 할 말을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리츠를 보니 말이 꼬이기 시작했다. 어떻게 말하지. 머리가 아파오는 기분이 들었다.
“마-쨩.”
근처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마오가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리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짜 무슨 일 있어? 덤덤하게 물어오는 목소리는 퍽 다정해서, 마오가 인상을 찌푸렸다. 리츠가 마오의 옆에 앉았다. 마오의 옆얼굴을 이곳저곳 뜯어보며, 리츠는 말을 기다렸다. 마오가 입을 몇 번이나 오물거리다가, 뱉어내듯 말했다.
“임신했나봐.”
리츠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마오가 고개를 돌렸다. 싫다고 하지 말아줘.
“정말?”
끄덕였다. 긍정의 표시였다. 주먹 쥔 손이 흔들려서, 마오는 마른 침을 삼켰다.
리츠의 눈이 샐쭉하게 가늘어졌다. 해사한 미소였다. 팔을 뻗어 마오를 감싸 안은 리츠가 입을 열었다.
“나랑 마-쨩을 닮으면 예쁘겠네. 아, 난 마-쨩을 더 닮았으면 좋겠어. 귀엽겠다.”
마오를 끌어안은 팔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품이 따뜻했다. 아, 괜한 걱정이었나. 긴장해서 뻣뻣하게 굳어있던 몸과 마음이 한 번에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애를 두고 난 왜 그렇게 걱정한 거지.
“뭐지, 되게 기분 좋은데. 뭐라고 말해야 돼? 결혼하자? 청혼이 너무 멋이 없네~……. 다시 준비해야겠어.”
괜히 눈물이 났다. 마음이 놓였다. 마오가 팔을 뻗어 리츠의 등을 끌어안았다. 리츠의 옷자락을 쥔 마오가 깊게 들이쉬었던 숨을 뱉었다. 숨이 떨리는 것 같았다. 리츠가 살짝 품에서 마오를 떼어놓고 살짝, 미간을 좁혔다.
“마-쨩, 울어?”
마오가 눈을 깜박거렸다.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볼을 닦았다. 축축하게 젖어있는 게 싫었다.
“혹시, 결혼 싫어? 싫다면 강요는 안 하겠지만. 울 정도로 싫다니, 조금은 상처야…….”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시무룩하게 눈꼬리를 늘어뜨리는 리츠에게, 마오가 손을 내저었다. 리츠의 손이 볼에 닿았다. 꼼꼼하게 눈물을 닦아내는 손길이 다정했다. 또, 울컥해버릴 것 같아서 억지로 웃은 마오가 입을 열었다.
“그냥, 리츠가 싫어하지 않아서, 그래서. 다행이라.”
리츠가 눈을 찡그렸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화내거나, 싫어할 까봐, 무서웠어. 그게 아니라, 마음이 놓였네.”
마오가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리츠가 멀뚱히 마오를 바라보다가 웃었다. 내가 말했잖아. 나는 마-쨩의 피나 눈물도 사랑해 줄 거라고. 믿음을 못 줬다니, 조금 충격인 걸……. 조곤조곤 내려앉는 목소리가 간지러웠다. 조금씩 말라가는 볼에 와 닿는 입맞춤도 간지러웠다. 쉽게 풀려버린 마음에, 분위기에, 마오가 다시 소리 내 웃었다.
“그럼, 할 말 끝?”
“응.”
“그럼, 오늘은 이만 자자.”
리츠가 마오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마-쨩, 하루 종일 이 생각했지? 나한테 미움 받는 게 그렇게 싫다니, 역시 마-쨩은 나 없으면 안 된다니까.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말하는 모습은 평소와 같았다. 이마에도 가볍게 입맞춘 리츠가 방의 불을 끄느라 일어섰고, 마오는 옅은 웃음을 얼굴에 띄운 채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방의 불이 꺼졌다. 옆이 푹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른 팔이 몸에 닿았다. 조금은 서늘한 손이 향하는 곳은 배인지라, 마오는 간지러워 웃었다. 걱정 괜히 했어, 피곤해. 마오가 투덜거리는 목소리에 리츠가 따라 웃었다. 마오가 살짝 몸을 틀어 팔을 뻗었다. 평소에는 늘 안아주면서 잤지만, 오늘은 안겨서 자고 싶었다. 순순히 품을 내어준 리츠가 가볍게 마오의 등을 쓸었다.
마-쨩, 청혼은 어떤 방식이 좋아? 피아노 쳐줄까? 아니, 그런 이벤트 싫으니까. 난 그런 거 좋은데. 받는 건 나잖아? 아, 케이크에 반지 넣어 놓을까? 씹으면 아프잖아, 그거. 보들거리는 대화가 이어졌다. 따뜻한 이불, 사라진 걱정, 다정한 사람. 눈이 절로 감겼다. 하루 종일 자신을 따라다니던 긴장이 풀려, 노곤했다.
“마-쨩.”
규칙적인 숨소리에, 리츠가 조용히 마오를 불렀다. 리츠가 살짝 시선을 내렸다. 마오는 누가 업어가도 모를 만큼 곤히 잠들어 있었다. 업어가는 놈은 용서하지 않을 거지만. 얼굴을 가리는 머리카락을 살짝 정돈해준 리츠가, 배시시 웃었다.
“마-쨩은 하나도 몰라도 돼.”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마-쨩을 잡아두고 싶어서 뭘 했는지. 상냥한 마오는 리츠가 어떤 수작을 부렸는지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게 뻔했다. 그저, 피임 기구가 확실하지 못하다는 걸 상기하고, 슬퍼했을 것이다. 상냥한 마-쨩, 사랑스러운 마오. 내 마오.
리츠가 마오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나만의 마오.
기분 좋은 어감이었다.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는 족쇄. 책임감 강한 너는, 정말로 날 떠나지 못할 테니까.
“기뻐.”
나만의, 내, 마오야.
리츠의 눈이 번들거렸다. 행복했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는 건가? 몸이 떨려, 리츠는 마오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마오로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감정들로 리츠의 붉은 눈이 빛났다. 나만의 마오.
죽을 때까지, 나만의 사람이 되어주는 거야. 리츠의 손이 다시 한 번, 마오의 배로 향했다. 아찔한 감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