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상한 날이었다. 마오는 어깨를 주무르며 그리 생각했다. 잘 모은 서류들을 한 곳으로 모아둔 뒤에 마오는 가방을 챙기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회장, 부회장, 이만 가볼게요. 그래, 고생했다. 마오가 학생회실 문을 잡았다. 이 문을 열면, 보통은 리츠가 누워서 자신을 기다리곤 했다. 그나마 나으면 앉아서일까. 차가운 바닥에 누우면 감기 걸리니까 그렇게 하지 말라고 몇 번을 이야기해도 일어서기 귀찮다며 늘어지던 아이였는데. 오늘은 다를 지도 모른다.
육중한 문을 밀었다. 고개를 돌리니, 리츠와 눈이 마주쳤다. 역시. 오늘의 리츠는 벽에 몸을 기대고 서있었다. 달빛을 피해서 그늘 속에 몸을 숨긴 채 서있던 리츠가 생긋 웃었다. 역시, 어딘가 이상했다. 늘 달빛이 좋다며 창문이 있는 쪽에서 뒹굴거렸는데. 위화감이 들었지만 애써 무시하고, 마오는 어설프게 웃었다.
밤의 하굣길은 조용했다. 그리 넓다고는 하지 못할 골목길. 길을 비추고 있는 가로등 몇 개가 서늘하게 깜박거리고 있다. 주홍빛의 가로등이 머리 위를 비추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맞잡은 손이 두 사람의 사이에서 가볍게 움직였다.
“그래서, 오늘은 스-쨩이 놀랐다니까. 리츠 선배가 연습에 열심히 참여하시다니, 하고.”
“그럴 만도 하네.”
마오는 리츠를 돌아보지 않고 슬쩍 웃었다. 웃는 입술 사이로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슬슬 겨울인가. 해가 오랫동안 사라져서 보이지 않는 시기다. 그래서 리츠가 하루아침에 바뀌어 버린 걸까.
마오는 오늘의 아침을 떠올렸다. 마오가 찾아가도 침대에 얌전히 누워서 꿈쩍도 하지 않는 아이가, 그래서 끝끝내 옷도 직접 갈아입혀 주고 업어줘야만 만족하는 아이가 일어나 있었다. 심지어 교복까지 입고 있는 상태였다. 놀라서 벙쪄있는 마오에게 리츠가 뭐라고 했더라. 별 다른 말없이 웃기만 했나. 일단, 등교가 쉬우면 좋은 일이니까. 등에 무게감이 없다는 게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뿐인가, 학교에서는 수업을 듣기도 했고 자신과 함께 밥을 먹기도 했다. 무려 낮에, 깨어있었다는 얘기다. 왜 이러는 거냐 물어도 그저 웃기만 할 뿐 아무 말이 없어서 저녁 때 자려는 걸까, 했더니만 부활동에도 얌전히 출석했다고 회장이 증언했다. 방금 얘기를 들어보니 나이츠의 연습도 성실히 해낸 것 같고. 도대체 무슨 일이지? 마오가 눈썹을 찌푸리고 웃었다. 리츠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오늘 너 완전 이상하다니까? 다른 사람 같아.”
후후. 리츠가 나지막이 웃었다. 둥글게 웃음 짓는 눈은 몇 년을 봐왔음에도 오늘따라 괜히 이상했다. 속이 텅 비어버린 것 같다. 뭐든지 혼자서 척척 해내는 리츠라니. 괜히 쓸쓸하면서도 리츠의 웃음이 잔상이 되어버린다. 어딘가, 리츠라기에는 더 어둡고, 리츠보다도 더 속내를 알 수 없는 느낌의 웃음이 마음에 걸렸다.
“뭐 어때? 마-군은 내가 이렇게 행동하길 바란 거 아냐?”
“그건 그렇지만.”
늘 그렇게 말했지만, 바꾸지 않았던 건 리츠 본인이었으니까. 나는 마-군의 일그러진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서 내 몸을 바치고 있는 거야. 마-군을 위한 상이라구. 천연덕스럽게 웃던 여름의 기억이 남아있는데, 고작 반 년 만에. 그 반 년 동안 리츠가 바뀔 만한 일이 있었나? 기억을 뒤져도 생각나는 것은 없었다. 하루아침에 바뀐 거니까.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마음을 바꾼 걸 텐데.
날 위한 거라고 했으면서. 어쩐지 쓸쓸하네. 멋쩍게 웃으면서 입을 떼려던 찰나였다.
“그래서 마-군은.”
“응?”
리츠의 눈이 번뜩였다. 붉은 눈이 탐욕스럽게 빛나고 있다. 마오가 눈을 깜박였다. 자신의 손을 잡은 리츠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도 같다.
“이런 내가 싫어?”
“응?”
“이전의 내가 더 좋아?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 나야? 아니면, 예전의 그 아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왜 자기 자신을 그 ‘아이’라고 지칭하는 거지. 마오가 고개를 돌리고 리츠의 말버릇 중에 이런 게 있었나 황급히 뒤져보았다. 아니, 자기 자신을 3인칭으로 지칭하는 버릇은 없었다. 행동이나 말투는 언제나 자신에게만, 묘하게 어린 아이 같았지 그런 적은 없었는데.
마-군. 대답해 줘. 보채는 소리에 마오는 마른 침을 삼켰다. 역시 어딘가 이상해. 마오가 입 안의 여린 살을 깨물고 고개를 돌렸다. 왼쪽으로, 돌렸다. 리츠를 보기 위해서.
……왼쪽으로?
마오가 손을 달싹거렸다. 지금껏 리츠와 하교하면서 왼쪽으로 리츠를 봤던 적이 있나? 리츠와 같이 밥을 먹은 적은?
없었는데.
리츠는 왼손잡이니까. 오른손잡이인 자신과 왼손잡이인 리츠는 언제나, 잘 쓰는 손을 잡고 하교하고는 했다. 늘 리츠가 오른쪽, 자신이 왼쪽. 리츠를 볼 때는 오른쪽으로.
“……너.”
마오가 입술을 혀로 쓸어내렸다. 입안이 말라갔다.
점심을 먹을 때도. 팔이 부딪히면 불편하다고 스스로 다른 테이블을 찾아 떠난 건 리츠였다. 엣쨩이랑은 같은 학년이었던 적도 있으니까. 같이 먹으면 편해. 요즘엔 하나가 더 늘었어. 같이 점심을 먹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는데, 같이 먹었다고?
팔이 부딪힌 기억도 없다. 맞은편에 앉았던 리츠는 어떤 손을 쓰고 있더라.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인데도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아 마오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리츠의 눈이 가늘게 휘어졌다. 살짝 시선을 떨궈 잡은 손을 확인했다. 내 왼손과 리츠의 오른손. 오늘, 리츠가 밥을 먹었던 손은.
“……리츠가 아니지.”
오른손이었어. 아침부터 느꼈던 모든 이질감이 한 번에 사라졌다.
리츠로 보이는 무언가가 히죽, 웃었다. 잡힌 손이 욱신거릴 정도로 아파오기 시작했다. ‘리츠’가 살짝 몸을 틀어 마오에게 한 발자국 내딛었다. 마오가 뒤로 물러났다. ‘리츠’는 개의치 않고 마오에게 다가왔다. 얼마 안 가 골목길 담벼락에 머리를 가볍게 부딪친 마오가 고개를 돌렸다. 막혔어. 다시 ‘리츠’에게 시선을 던진다. 눈앞의 인물은 아주 익숙한 얼굴과 목소리로, 다시 물음을 던졌다.
“마-군, 대답해줘.”
‘리츠’의 왼손이 올라왔다. 마오의 몸을 타고 올라오던 ‘리츠’의 손가락이, 심장 부근에서 멈춰 섰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리츠’의 얼굴이 조금 더 가까워진다.
“역시 그 녀석이 더 좋은 거야? 널 귀찮게만 하는? 응, 마-군?”
귓가에 닿는 목소리가 간지러웠다. 조곤조곤하게 내뱉지만 모든 단어에 힘이 실려 있다. 마오가 눈을 질끈 감았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 내기 하지 않을래?
너 같은 거랑 할 내기 같은 건 없어. 요괴 주제에. 내 얼굴 하고 있는 거 불쾌하니까?
본인도 괴물 주제에 너무한다. 나는 너의 일부인 걸. 한 번 들어나 봐. 네가 그토록 끔찍하게 아끼는 마오-의 마음이 궁금하지 않아?
……뭐?
널 귀찮게 여기고만 있을지, 마지못해서 좋아하는 척 하는 건지 확신 못 하고 계속 불안해하고 있잖아? 알려줄게.
…….
마오-가 네가 좋다고 하면, 그래. 햇빛이 비춰진 흡혈귀는 재가 되는 게 좋겠지. 꿈꿔왔잖아? 행복하게 재가 되어 사라지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