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마오가 뒤척거리는 소리를 다 듣고 있기는 했지만 말을 걸어올 줄은 몰랐다. 잠을 못 자? 묻기에는 너무 참견인가 싶기도 하고, 혹시라도 자고 있는데 잠버릇이 심한 것이라면 잠을 깨울 수도 있으니까. 괜히 마음이 쿡쿡 쑤시는 걸 느끼며 리츠는 슬며시 눈을 떴다. 마오는 자신이 불러놓고 리츠가 진짜로 눈 뜰지는 몰랐는지 흠칫 어깨를 떨었다. 리츠가 이불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마오의 울망울망한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커다란 눈이 불안하게 떨린다.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일렁거리는 눈동자에, 리츠는 눈을 크게 떴다.
“마-군?”
“그, 그게.”
마오가 답지 않게 안절부절 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냐고, 나쁜 꿈이라도 꿨느냐고 묻기도 전에 마오의 등 뒤로 불빛이 번쩍했다. 히익. 번갯불에 리츠의 얼굴이 선명히 보였는지, 마오가 다시 한 번 몸을 떨며 귀를 막았다.
얼마 안 있어 귀를 아프게 할 만큼 커다란 천둥소리가 들렸다. 마오는 눈을 질끈 감은 채였다. 아, 이건가. 오늘 밤 내내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온다고 했다. 자려고 눕기 전에도 마오가 천둥번개에 움찔거리는 모습을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떨고 있을 줄은. 마오가 한 쪽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작은 손이 귀에서 천천히 떨어졌다. 마오의 모든 행동이 슬로우 모션처럼 느리게 보였다. 단순한 착각인지, 마오의 실제 행동이 느린 건지 리츠는 알 수 없었다.
마오가 어설프게 웃었다.
“나, 그……. 천둥 치는 거, 무서워서…….”
마오는 말 못 할 비밀이라도 털어놓는 듯 조심스러웠다. 리츠가 눈을 깜박거렸다.
“동생이랑 잘 때는, 안 무서운 척 했는데……. 그 때도 무서워서 손 같이 잡고 자고……. 그랬는데, 지금은, 또, 무서워서.”
“응.”
“자, 자는 거 깨워서 미안해!”
마오가 두 손바닥을 착 붙였다. 잔뜩 찌푸려진 얼굴은 이젠 울먹거림보다 미안함이 더 짙게 드러난다. 리츠가 한숨을 내쉬었다. 깨워서 미안하다니, 참 마오답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7살인데. 무서워하는 걸 무섭다고 말하고 투정부릴 수 있을 텐데, 마오는 언제나 든든한 오빠이고 아들이어야 했으니 말을 못했을 터다. 마오의 짧은 인생에서 리츠가 마오를 본 기간은 그보다 훨씬 짧았지만, 리츠는 얼추 정확한 추측을 하고 있었다.
리츠가 마오를 토닥이고 그대로 자리에 눕혔다. 함께 덮고 있던 이불을 마오에게 끌어당겨 덮어준 뒤에 리츠는 마오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마오의 초록빛 눈동자는 여전히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괜찮아, 마-군.”
리츠가 마오의 손을 잡았다. 작은 손가락들이 얽혀 서로의 손등을 간질였다.
“내가 계-속 마-군 옆에 있어줄게. 안 무서워해도 돼.”
“계속?”
“응, 계-속. 그리고 깨워도 화 안 낼 테니까, 안 미안해도 돼.”
나는 그야 당연히, 릿쨩이 자는 줄 알고……. 마오가 입술을 오물거리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흡혈귀랬잖아, 밤에는 조금 자. 리츠가 부루퉁한 얼굴로 답했다. 마오가 눈을 접으며 웃었다. 번개가 쳤다. 방 안이 환하게 밝아졌다. 마오의 웃는 얼굴이 번갯불처럼 잔상으로 남았다. 그게 뭐야, 릿쨩 또 장난 치고. 아니라니깐. 리츠가 볼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천둥소리가 울리고, 마오가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무섭긴 했는지, 리츠의 손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리츠가 따라 웃었다. 믿지 않아줘도 좋아. 손의 온기가 따뜻했다.
마오는 변했다. 물론 나쁘게 변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낙원에서 빛나는 사람들과 함께 스스로 반짝였다. 봄에 깨달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알고 있다는 것과 마음으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건 별개의 일이었다. 알고 있음에도 저절로 심통이 나는 건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소낙비가 내렸다. 꽤 거센 비였다. 천둥번개가 간간히 지상으로 떨어지고는 했다. 점점 더 굵어지는 빗줄기를 보고 리츠는 홧김에 유닛 연습에서 도망쳤다. 연습의 막바지였는데. 연습이 끝나면 마오가 데리러 올 것과 우산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심술이 솟아 그 공간에 있기가 싫었다. 갑자기 연습실에서 나가 사라지는 리츠를 잡을 사람은 애석하게도 없었다. 소낙비이기에 우산을 가지고 온 사람이 없었으므로. 지금쯤이면 연습이 끝났을까.
리츠가 손을 뻗었다. 반장갑 사이로 스미는 빗물이 차가웠다. 머리칼이 축축이 젖어들고 있었다. 리츠가 멍하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순식간에 어두워진 하늘에서는 빗줄기가 쉼없이 떨어졌다. 얼굴에 부딪히는 빗방울이 꽤나 따갑다. 리츠가 고개를 떨궜다. 가로등 불빛이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가로등에 몸을 기댔다. 꽤 오랫동안 서있었기에 다리가 아팠다. 리츠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어린 날의 마오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더 이상 천둥번개를 보고 무섭다고 할 나이가 아니다. 계속 곁에 있는다는 말에 안심을 하던 나이도 지나갔고, 자연스럽게 손깍지를 끼고 장난을 치던 나이도 지나며 자랐다. 지금의 마오가 무서운 것이라고는 모두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미움 받는 것, 정도일까. 하지만 마오가 미움을 받을 리는 없으니.
그것이 또 한 번 외로웠다. 마오의 변화를 부정하면 안 되는데. 앞서 씩씩하게 나아가는 마오와 다르게, 자신은 느릿느릿하게 준비를 하고 있는 터라. 누워 있기만 하면 마-군을 잡지 못해. 그래서, 나도 같이 가려고 하고 있는데. 마오가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질까 두려웠다. 혼자가 될까봐, 노력했는데도 결국 마오의 시선 끝에 닿지 못할까 외로웠다. 쓸쓸했다. 이래서는 몇 개월 전과 달라진 게 없다. 또 마오를 보면 울컥 짜증을 내버릴 지도 모르지. 그런 일은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마-군을 슬프게 하긴 싫어. 리츠가 살짝 얼굴을 들었다. 여전히 비는 떨어지고 있었다. 몸이 차가워지는 게 느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조금 더 있다가, 학교의 모두가 파할 것 같거나 비가 그칠 것 같으면 그 때 돌아가자. 리츠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기 직전의 세계가 한 번 환하게 밝아졌다.
“리츠!”
천둥소리에 섞여 목소리가 들렸다. 가장 좋아하는 목소리가, 가장 좋아하는 톤으로, 가장 좋아하는 말을 내뱉고 있었다. 지금은 별로 듣고 싶지 않았는데. 리츠가 비죽 고개를 들었다. 마오가 숨을 고르며 후드 속에서 까만 후드를 꺼냈다. 뭐하고 있는 거야, 감기라도 들면 어쩌려고! 마오가 후드를 리츠의 머리에 뒤집어 씌웠다. 잔뜩 젖은 자줏빛의 후드와 달리 까만색의 후드는 꽤 멀쩡한 상태였다.
“돌아가자, 다들 걱정하고 있다고? 너 갑자기 뛰어나갔다고 해서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마오가 눈썹을 찌푸리며 허리에 손을 올렸다. 리츠는 입을 다물었다. 리츠, 빨리 가자. 마오가 허리를 굽히고 손을 내밀자, 리츠는 손을 뻗어 마오의 옷자락을 잡았다.
“싫어.”
“리츠?”
“안 가. 지금은 안 갈 거야.”
마오가 눈을 깜박였다. 동글동글, 선한 눈에 의아함이 담겼다.
“가지 말아줘, 마-군.”
막무가내로 억지를 부리는 리츠를, 마오는 굉장히 오랜만에 보고 있었다. 다른 어리광은 적어도 가볍게 넘어가고는 했는데. 얼핏 화가 났나 싶을 정도로 찌푸려진 리츠의 얼굴은 가볍게 넘어갈 만한 것은 아니었다. 봄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도 덜컥 화를 냈지. 그 때와 다른 점은, 적어도 리츠가 자신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 것일까. 머리카락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은 현실이건만, 빗소리가 귓가에서 사라졌다.
“리츠?”
리츠는 입술을 모았다. 시선을 살짝 내리깐 리츠는, 눈만 깜박이는 인형마냥 움직임도 거의 없었다.
“무슨 일 있어?”
여전히 리츠에게서는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빗물에 젖어 흘러내리는 머리를 쓸어 넘긴 마오가 다시 한 번 이름을 불렀다가, 결국 혀끝에 애칭을 담았다. 릿쨩.
“……무서워.”
리츠가 목소리를 흘렸다. 자칫하면 들리지도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였다. 응? 마오가 조금 더 허리를 숙였다. 리츠와 눈을 맞추기 위함이었다. 리츠는 마오의 쪽을 힐긋거리다가, 겨우 마오와 눈을 맞췄다.
“마-군이 이제 천둥도 번개도 안 무서워하는 게, 무서워. 나는.”
완벽한 사실이었다. 완벽한 사실은 아니었다. 마오가 눈을 깜박였다. 리츠의 정확한 의중을 들여다보는 건 늘 어려웠지만, 오늘은 유독 심한 듯 했다. 이런 거로 별난 억지를 부리는 아이는 아닌데도. 아득해져오는 정신을 붙잡고, 마오는 오랫동안 뜸을 들이고는 입을 열었다.
“괜찮아, 리츠.”
마오가 무릎 위에 얹혀 있던 리츠의 손을 잡았다. 찬 비 속에서도 마오의 손은 따뜻했다.
“리츠가 그래준 것처럼, 나도 계속 리츠 옆에 있어줄 테니까.”
마오가 환하게 웃었다.
“그런 거, 안 무서워해도 돼.”
물론 이런 말이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마오가 다른 한 손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리츠의 손을 쥔 마오의 손에 단단하게 힘이 실렸다. 어린 날과는 다른 온기였다.
“……계속?”
확인하듯, 리츠가 물었다.
“응, 계-속.”
리츠가 빤히 마오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린 날의 마오가 무엇을 무서워하는지 명확히 알 수 있었던 어린 날의 자신과 달리, 지금의 마오는 리츠가 무엇을 무서워하는지 명확히 알 수는 없을 터였다. 그럼에도,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들려주는 마오는.
“……어쩔 수 없네에-.”
마오의 입버릇을 읊으며, 리츠는 가만히 미소 지었다. 마오가 시원스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모두 기다려. 알겠어, 그러니까 먼저 가지마. 안 그래, 계속 있겠다고 했잖아? 마오가 어깨를 으쓱였다. 걸음을 빨리 하는 마오의 한 발자국 뒤에서, 리츠는 왼손을 바라보았다. 맞잡은 손은 그대로였다. 하늘이 번쩍, 빛났다. 마오의 손을 잡은 리츠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