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만한 날들이었다. 과거형인 이유는, 불과 며칠 전까지‘는’ 충만한 날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 데뷔를 하고, 가족보다 더 소중한 사람도 생겼다. 사랑을 주면 그만큼, 혹은 그보다 더 돌려받는 나날이었다. 친구들은 반짝거렸고, 팬들은 상냥했으며, 하나뿐인 연인은. 보기만 해도 사랑이 느껴지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연인은, 늘 다정한 음성으로 자신의 애칭을 입에 담는 연인은.
20대의 초입에 막 들어선 이사라에게, 거의 한 평생을 같이 한 연인의 존재-물론 그 중 대부분의 시간은 소꿉친구로 지냈지만-는 컸다.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었지만, 이사라는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리츠는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다. 분명히 다른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받지만 리츠는 다른 무언가가 더 있었다. 주고받는 사랑뿐만 아니라, 무언가가. 리츠의 곁에서라면 조금 더 편하게 잘 수 있었다. 조금 더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언제나 어리광만 부리고 투정부려도, 리츠의 옆은 편안했다.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언제나 자신의 옆에 있을 쉼터. 리츠에게 직접적으로 말한 적은 없어도, 이사라는 그리 생각했다.
리츠의 감정을 의심한 적은 추호도 없었다. 자신을 눈에 담으면 빛이 스며들듯 빛나는 두 눈을, 자신의 앞에서만 자연스럽게 늘어놓는 사랑의 말들을, 온 몸으로 확인을 시켜주는 거대한 감정을 의심할 수는 없었다. 언제나 확인받는 기분이었다. 나는 마-군을 이렇게나 많이 좋아하고 있어, 사랑하고 있어. 사랑받는 것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몸 구석구석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이사라가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리츠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주었나? 이사라는 두 다리를 그러모았다. 세운 무릎 사이로 고개를 묻었다. 잔잔하게 가라앉은 두 눈동자는 떨림이 없었다.
리츠를 볼 때면 눈이 빛났을까. 널 좋아한다는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얼굴로 너를 대했을까. 나는 다정하게 너를 부르고, 온 몸으로 확인시켜주었을까.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걸. 너처럼, 언제나.
자신할 수 없었다. 그랬기에 이사라는 슬펐다. 확신 받으며 확신을 주지 못했다. 한심하다, 그리고 알 것만 같았다. 왜 리츠가 자신을 떠났는지. 왜 어디로 간다 말도 없이 그대로 사라진 것인지. 리츠도 내게 지쳐버린 거야. 이사라가 손에 힘을 주었다. 희미하게 무릎에 손톱자국이 났다.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이사라는 눈을 꽉 감았다.
처음은 그저 단순한 변덕이라고 생각했다. 집에 가서 자고 오려나 보다. 본가가 그리웠나 보지. 자신과 함께 살게 된 이후로 간 적이 없으니, 당연히 그쪽으로 갔거니 믿었다. 다음 날부터는 불안했다. 스케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리츠가 있을 줄 알았다. 불이 다 꺼진 집 안으로 들어오면서, 불길함을 느꼈다. 집으로 간다한들 이렇게 오랫동안 연락이 없는 리츠는 처음이었다. 연락이 없어. 그제야 이사라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휴대폰을 뒤졌다. 나루카미에게 연락을 하고, 잘 모르겠다는 어설픈 대답을 들은 후에는 사쿠마 선배에게 연락을 했다. 사쿠마 선배는 덤덤하게 잘 모르겠다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같은 나이츠의 멤버도, 친형조차도 리츠가 간 곳을 알지 못했다. 이사라는 부지런히 머릿속을 뒤졌다. 리츠가 갈 만 한 곳. 애석하게도 짚이는 구석이 없어, 울고 싶은 심정으로 리츠에게 연락했다. 연락은 닿지 않았다.
리츠. 이사라가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일주일 간 입 밖으로 낸 적 없는 짧은 두 음절이었다. 그 말은 리츠가 사라진 지 이틀, 하고도 일주일이 지났단 말이었다. 일주일 동안 어떻게 지냈더라.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아서, 이사라는 조금 더 몸을 움츠리고 얼굴을 구겼다.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릿쨩. 빨리 돌아와.
70%
리츠는 증발했다. 이슬이 풀잎 위에서 사라지듯, 그렇게. 인기 아이돌임에도 리츠의 행방을 아는 이는 없었다. 2개월 째였다. 인터넷에서는 나이츠야 워낙 개인 활동이 많아 이번엔 리츠가 휴식기에 들어갔을 것이라는 추측성 글이 떠돌아 다녔다. 많은 사람들이나, 팬들이 리츠가 사라진 것을 그렇게 느낀다면 그런대로 다행이었다. 적어도 대중이 흔들릴 일은 없고, 그만큼 구설수에 오를 일도 없을 테니까. 그래도 역시 리츠의 행방 자체가 묘연하다는 것에, 이사라는 입술을 깨물며 인터넷을 껐다.
2개월 째 리츠를 볼 수 없었다.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혹시나 자신이 스케줄 때문에 나가있을 때 돌아 올까봐 집의 비밀번호를 바꾸지도 않았다. 언제나 무엇이 움직였는지 알 수 있도록, 반듯이 치워놓기도 했다. 그러나 변하는 건 없었다. 도둑도, 나뭇잎도, 바람도 들어오지 않은 듯 답답하게 막힌 공기를 자신의 손으로 열며 이사라는 수십 번 절망했다. 그리고 몇 번인가 눈물을 보였다. 두 어 번 원망도 했다. 떠날 거였으면 말이라도 해주지. 마지막까지, 끝까지 다정하게 굴어놓고 떠날 거였으면 그러지 말지.
답답했다. 몸속에 답답함이 꾸덕꾸덕 쌓여가고 있는데 풀어줄 수가 없었다. 꾸준히 몸관리를 해야 하는 직업이었기에 술이나 담배는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누군가를 붙잡고 마음껏 울 수도 없었다. 자신의 일을 남에게 옮겨 그들을 걱정하게 하는 것은 스스로가 생각할 때 별로였으며, 그게 리츠와 연관된 굉장히 개인적인 일이라면 더더욱 별로였다. 그랬기에 누군가에게 말하며 울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리츠처럼 잠의 세계로 도피하기엔 이사라 본인은 너무나 성실한 인간이었다. 자신을 찾는 사람들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리츠가 들려주었던 말이 있었다. 마-군의 피와 땀도 모조리 다 사랑할 것이라는 말. 너덜너덜해진 마-군조차 정말 좋아한다는 말. 그렇게 모든 걸 사랑해준다는 리츠도 날 떠났는데 이 사람들은? 내가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지금처럼 뭐든 열심히, 잘 하는 ‘이사라 마오’가 아니라면 이 사람들은 더 쉽게 떠나가는 게 아닐까?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들은 이사라를 괴롭혔고, 버겁게 만들었다. 이사라가 더욱 일에 매달리게 만들었고, 그만큼 지치게 만들었다. 오죽하면 호쿠토에게 한 소리를 들을 정도였으니까. 그 때도 이사라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사라에겐 버릇이 하나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 씻을 때면 자신을 멍하게 보다가 한 번 웃고는, 웃음을 체크한 뒤에 중얼거리는 것이다. 별 말은 아니다. 괜찮으니 오늘도 힘내자는, 짧은 한 마디였다.
정말 마음이 괜찮은 사람은 스스로에게 괜찮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리츠와 함께 할 때 주문을 걸 듯 대뇌었던 적이 있던가. 답을 말하자면, ‘아니오’였다. 힘든 만큼 웃었다. 버거운 만큼 움직였다. 사람들은 그런 이사라를 사랑했다. 그 마음과 사랑을, 이사라는 놓을 수 없었다.
50%
슬슬 대중들은 이상함을 알아차렸다. 아무리 휴식기라 하더라도 이렇게나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것은 이상하단 것이었다. 나이츠 측은 리츠의 의견을 받아들여 그저 쉬게 하고 있을 뿐이라는 답변을 했다. 5개월 째였다.
슬슬 이사라도 빈 공간을 알아차렸다. 리츠가 떠난 후에 느껴졌던 허전함의 정체를 차츰 깨닫고 있었다. 이사라는 언제고 자신의 곁에 있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을 잃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게서 등을 돌려도 곁에 있어주리라고, 막연하게 생각한 사람이었다. 절대적이라고까지 생각한 마음을 잃었다. 그 마음에 기대고 있던 자신을 알아버렸다. 막대를 기둥삼아 피어나던 나팔꽃에게서 막대를 제거한 셈이다. 지지대를 잃은 꽃은 허무하게 떨어지고, 시들어갈 뿐. 자신은 시들어가고 있다.
리츠의 마지막 말을 기억했다. 잠결에 들은 말이었다. 비몽사몽한 새벽. 잠들락 말락 할 때 즈음 들렸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마-군, 사랑하고 있어. 사랑하고 있으니까, 나는…….
뒤는 기억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잠결인지라 어쩔 수가 없는 법이다. 사랑하고 있다면서 하루아침에 사라지다니. 말도 안 돼. 리츠의 마지막 말을 상기할 때마다, 흙마저 잃어버린 꽃처럼 이사라는 무너졌다. 무너지고 있었다.
힘겨웠다. 웃는 것도. 나를 버리지 말아주세요, 라고 외치는 것도 목이 쉬면 포기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20%
리츠는 몸을 섞을 때면 이사라에게 자신의 태양이라고 말하고는 했다. 나의 태양, 나의 햇님. 이사라에게서 햇님의 냄새가 난다며 등에 얼굴을 묻은 적도 꽤 있었다. 이제는 거의 잊혀진 감각에 가까웠지만, 이사라가 기억을 더듬었다. 어느 때인가 이사라는 덤덤히 대꾸했다. 리츠는 달이라고. 내가 태양이면 너는 나의 달이라고. 그 어떤 말도 덧붙이지 않고 그저 그렇게 한 번. 그랬더니 리츠는 자신의 등에 얼굴을 묻은 채 웃었다. 응, 맞아. 나는 마-군이 없으면 빛나지 않아. 계속 어둠 속에 있었을 거야. 날개뼈 부근이 간지러웠다.
7개월.
태양을 잃은 달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 거야? 반년이 넘어가도록 소식 하나 없었다. 머리카락 한 올도 보여준 적이 없었다. 이사라는 짓무른 눈을 하고 사무소에 휴식을 신청했다. 사무소는 흔쾌히 승낙했다. 리츠가 사라진 몇 개월 동안 이사라가 닥치는 대로 일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렇다한들 받은 휴식기간은 2개월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리츠가 보고 싶었다. 어디에 있는지 짐작도 가지 않으니 찾을 길이 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제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사라는 머리맡에 놓인 두 개의 베개 중 하나에 머리를 묻었다.
그저 만나고 싶었다.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얼굴이라도 보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내가 미워졌으면 미워졌다고 말하라고 요구하고 싶었다. 그렇지 않다면 왜 떠나 간 거냐고 따지고 싶었다. 그 뿐이었다.
벨이 울렸다. 무시했다. 두 번이 더 울렸다. 지친 몸을 이끌고 이사라는 침대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머리가 정돈되지 않아 부스스할 테지만, 이사라는 개의치 않고 문을 열었다.
문을 열었을 때 보인 것은, 묘하게 방송에서 마주쳐도 자신을 피하려고 했던 리츠의 친형이었다.
10%
고민했다. 한 달 하고도 보름의 시간을 고민하는 것으로 보냈다. 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리츠가 원하지 않는다면 보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도. 이사라는 리츠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사랑하고 있어.
이사라는 문을 열었다. 혹한이 코끝을 찔렀다. 완연한 겨울이었다, 그곳은. 잡힐 수 있을까.
0%
흡혈귀에게도 인간의 자살과 같은 방법은 있다. 방 전체를 얼듯이 차갑게 만든다. 커튼도 치고, 빛이나 따뜻함은 들어올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그 주변에는 꽤나 많은 피가 필요하다. 그리고, 잠에 빠진다. 죽은 듯이 깊은 잠에 빠지면서, 몸을 그대로 얼린다. 인간들이 만들어 낸 더위에 익숙해진 몸일수록 잠에 빠졌다가 깨는 기간이 짧다. 종종 깨면 피를 마시고, 다시 잠을 청한다. 몸이 추위에 적응하면 할수록 잠의 시간은 늘어난다. 일어났다가 잠드는 걸 반복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어느 순간 숨도 쉬지 않고 잠에 빠지듯 사라지게 된다. 오래 전부터 이 방법을 쓰며 죽을 일이 있을까, 리츠는 생각했다. 그 단계가 꽤나 번거로워 잘 사용하지 않는 자살법이다.
꿈을 꿨다. 한낮의 꿈이었다. 사랑하는 인간을 만나고, 그 옆에서 사랑을 했다. 사랑을 받았다.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 마오가 나오는 꿈이었다. 꿈속에서의 마오는 여전히 상냥했고, 성실했고, 리츠에게도 손을 뻗는 태양이었다. 환하게 빛이 나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타들어가도 좋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타들어가는 건 괜찮았다. 그러나 마오가 덩달아 어두워지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나만이 가지고 싶다는 욕심이 고개를 치켜들어, 리츠는 자신을 원망했다. 마오는 타인의 존재 없이 살기가 힘든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누군가의 애정을 얻고, 신뢰를 얻고, 그것을 기반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는 아이에게서 자신을 제외한 누군가를 다 없애버리고 싶다는 소망을 갖는다니. 끔찍할 만큼 달콤한 소망이었다. 그것을 듣는다면 마-군은 날 미워 할 거야. 질색할 지도 몰라. 리츠는 무서웠다. 다른 사람은 상관없었다. 마오에게 미움 받는 것은, 두려웠다.
내가 마-군을 독점하려는 마음이 들지 않게, 사라져버리자.
간단한 생각이었다. 자기 하나쯤 없어도 마오는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태양이니까. 자신의 우주는 마오였지만, 마오의 우주에서 자신은 별 하나에 지나지 않았으니. 그저 조금 더 가까운 별이 사라지는 것. 마오는 자신을 잊고, 새로운 사람과 사랑도 하고, 그렇게. 행복해 질 수 있으리라 믿었다.
리츠가 천천히 눈을 떴다. 떴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시야는 어두웠다. 아직 눈꺼풀을 들어 올리지 않은 채 의식만이 기상한 상태였다. 몸은 잘 움직이지 않았지만, 느낄 수는 있었다. 방 안이 훗훗했다. 이상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억지로 만들어 낸 더위는 자신의 의식을 깨웠다. 곧 몸이 풀린다면 몸도 움직일 수 있으리라. 리츠는 손끝에 힘을 주었다. 냉각 장치가 고장이라도 났다면, 최대한 빨리 고쳐야 했다.
방 안은 계속해서 더워지고 있었다. 냉각 장치가 고장이 나다 못해 아예 죽어버린 듯 했다. 죽어야 할 건 나인데, 왜 저게 죽냐. 리츠는 속으로 혀를 차다가 시야가 밝아진 걸 느꼈다. 역시 이상했다. 빛 또한 잠들기 전에 차단했을 텐데.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성공했다. 손가락 끝도 움직여 보았다. 움직였다. 몸이 풀렸다. 리츠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릿쨩.”
생각도 못한 사람이 그곳에 있을 줄은 몰랐다. 몸을 일으키자 보이는 얼굴에, 리츠는 숨을 들이쉬고 멈췄다. 숨을 내쉬는 법을 잊은 것은 아닐까. 침대가에 앉아있던 마오는 그리 생각했다.
“죽은 줄 알았어.”
입은 아직 떨어지지 않았다. 혀는 속으로만 찼지,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
“몸이 너무 차가워서…….”
마오는 리츠를 바라보고 어설피 웃었다. 리츠가 숨을 내쉬었다. 놀란 눈은 떨리고 있었다. 이곳은 어떻게? 마오가 리츠의 눈치를 살폈다.
“사쿠마 선배가 알려줬어. 리츠 너, 여기 있다고.”
“……아.”
입술과 혀의 경직이 풀렸다. 리츠는 목소리를 내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목소리는 형편없이 갈라져 있었다. 리츠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널브러진 수혈팩이 보였다. 가장 보여주고 싶지 않던 상대였는데. 힐긋, 마오에게 시선을 던졌다. 리츠의 얼굴이 구겨졌다.
“……마-군.”
약 9개월 간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던 애칭을 들은 마오가 고개를 들었다.
“얼굴이 상했어.”
“…….”
“얼굴이, 상했어.”
리츠는 또렷하게 말했다. 깨어나자 보는 게 결국 내 상태구나, 너는. 마오는 그리 생각했다. 늘 아침마다 자신의 얼굴을 봐서 몰랐는데. 많이 상해가고 있었던 걸까. 마오는 오랫동안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왜 온 거야.”
리츠는 말을 돌리지 않고 그대로 질문을 던졌다. 난 이 모습을 네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 리츠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마오는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리츠가 느끼기에는 굉장히 긴 시간이었다. 잠만 자서 시간 감각이 다 사라진 건지도 모른다.
마오는 리츠의 질문에 무슨 말을 할까, 생각했다.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왜 떠나간 건지 궁금해서? 아니, 아니다. 그것보다는 더 큰 이유가 있지 않은가. 여기서까지 솔직하지 않을 필요는 없었다. 마오가 리츠를 바라보았다.
“보고 싶었으니까.”
리츠는 호흡법을 다시 잊을 뻔했다. 마오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보고 싶었어, 릿쨩.”
오래된 애칭을 혀끝에 올린다. 얼마 만에 듣는 애칭인지 알 수 없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지? 리츠는 가늠할 수 없었다. 그 사이에 두 번쯤 깼으니 1년이 흐른 걸까. 왜 아직도, 그러면, 마-군은 나한테 보고 싶었다고 하는 거지…….
“나는, 나는…….”
리츠는 말을 골랐다. 울 것 같은 마오를 안아줘야 할까? 예전이라면 그저 안아줬을 테다. 그런데 지금, 무슨 염치로? 먼저 떠난 주제에.
“나는.”
보고 싶었다는 말에 가장 말해주고 싶은 것은. 리츠는 얼굴을 찌푸렸다. 역시, 울고 싶은 얼굴이었다.
“나도, 보고 싶었어. 마-군이.”
꿈을 꾸고 있었어. 마-군의 꿈을.
“그리고, 보고 싶지 않았어. 마-군이…….”
리츠가 이불을 움켜잡았다. 차마 마오를 마주할 자신 따위는 없어서, 리츠는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쏟아냈다.
“마-군을 내가 독점하고 싶어질 까봐 도망쳤어. 마-군을 다시 보면 또 욕심낼 것 같아서, 찾아갈 수도 없었어. 그래서 그냥 죽으려고 했어. 마-군은 그렇게 살아갈 수 없으니까, 나 혼자로는 안 되니까.”
마오가 입술을 씹었다.
“그래서 마-군이 빛을 잃을 까봐, 날 미워하게 될 까봐, 나는……. 나는.”
리츠가 입술을 깨물었다. 마오는 그저 리츠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서웠어.”
리츠가 중얼거렸다. 두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더 있었다면, 방 안의 어떤 물체가 움직였다면 듣지 못할 만큼 작은 중얼거림이었다. 마오가 눈을 깜박거렸다.
무서워하는 리츠는 처음이었다. 화를 내는 리츠는 봤어도, 여유와 웃음을 잃고 말하는 리츠는 낯설었다. 생경한 모습에서, 마오는 문득 동질감을 느끼고 입 안쪽의 여린 살을 깨물었다. 리츠에게는 자신이 없는 삶보다는 죽음이 나은 선택이었다. 자신에게는 리츠가 없는 삶은 죽은 것마냥 그런대로 살아가는 삶이었다. 완전히 같을 수는 없기에, 그 정도에서 차이는 있을 지라도.
“너나 나나.”
리츠가 마오에게 시선을 옮겼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붉은 눈은 일렁이고 있었다. 마오가 울 것 같은 얼굴로 웃었다.
“없으면 안 되겠네.”
목적어는 생략되었어도 알 수 있다. 리츠가 이를 맞부딪혔다. 마오는 지금, 자신에게도 리츠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저 우주의 수많은 별 중 하나인 자신에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리츠.”
“응, 마-군.”
목소리가 떨렸다.
“날 좋아해?”
마오의 물음에 리츠는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해, 정말로. 정말로. 마-군한테 미움 받는 게 무서울 정도로, 그만큼, 좋아해. 사랑하고 있어.”
마오가 웃었다. 리츠도 따라 웃었다. 진심이 가득해 버거울 정도의 무게였다.
“좋아해, 사랑해.”
리츠는 쉼 없이 말했다. 그간 들려주지 못한 마음을 그 자리에서 모두 쏟아내기라도 하듯이.
“나도 그래. 그러니까, 리츠.”
마오의 목소리에 울음이 섞였다. 리츠는 자신이 울고 있다는 걸 알았다. 방은 더웠다. 느리게 뛰던 심장은 빨라져있다.
“계속 내가 잡았으니까, 이번은 잡아줄 거지?”
100%
처음 만났을 때 손을 내민 건 마오였다. 고등학생 때, 무턱대고 화를 내고 원망했을 때조차 먼저 찾아온 건 마오였다. 그리고 지금도, 먼저 찾아온 건 마오였다. 마오의 빈 손이 보였다. 리츠가 손을 뻗었다. 정말 잡아도 될까, 리츠는 짧게 고민했다.
“……응.”
리츠가 마오의 손을 잡았다. 마오가 웃었다. 그렁하게 고여 있던 눈물이 흘러 리츠는 마오의 뺨에 남은 손을 갖다 대었다. 따뜻했다. 잊고 있던 온기였다. 그 겨울의 온도는, 그토록 다정하고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