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예능계에서 꽤 오랜 시간 활동을 해도 그의 앳된 얼굴은 변함이 없었다. 19세 소년에서 멈춰있는 외형. 활동하고 있는 유닛의 막내가 제법 어른스러운 티를 내며 웃을 때도, 리츠는 연장자임에도 불구하고 더욱 더 소년 같은 얼굴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다. 세간에서는 얼굴이 데뷔 때와 큰 변화가 없는 사쿠마 형제를 통틀어 흡혈귀 형제라고 부르던가. 팬층은 본인들이 농담 삼아-그것이 진실인지 농담인지, 사쿠마 형제는 언제나 제대로 대꾸해준 적 없이 웃어넘기기만 했다-하는 말들이 다 이런 외형 때문 아니겠느냐며 떠들었다.
이사라 마오는 성장한다.
그의 오래된 소꿉친구이자 연인과 달리, 이사라 마오는 성장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키가 조금 더 컸고, 눈에 크게 띄지는 않지만 데뷔 때와 비교한다면 더 어른스러워진 얼굴로 무대에 오르고는 했다.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마오는 생각했다. 인간은 나이를 먹어가기 마련이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맞추어 변화하고, 사고나 병이 아니라면 종내에는 숨이 멎고 흙으로 돌아간다. 인간이란 그런 생물이니까. 모든 살아있는 생물들은 언젠가는 자신의 수명을 다하고, 흙으로 돌아가니까.
그렇다면 리츠는?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마오는 애써 부정하고 있던 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사쿠마 리츠는 인간이 아니다. 인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 요괴, 괴물, 본인의 말마따나 흡혈귀라든가, 넓게는 그저 인외의 존재라고 불러야 좋을. 수없이 부정하고 모른 체 하며 핀잔이나 주었는데도. 네가 요괴냐며 불안한 짜증을 왜 내었는데. 왜 내가, 너를 인간이라고 믿고 싶었는데.
마오가 눈을 깜박였다. 벽지가 보였다. 벽지의 무늬가 머리를 어지럽히는 것만 같다. 모로 누워있기에 흘러내려 눈을 가린 머리카락을 치운다. 머리카락이 내려와도 이제는 아무렇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다가, 마오는 자신을 안고 있는 팔을 바라보았다. 창백하다기에는 혈색이 있고, 그저 하얗다고 하기에는 손가락으로 핏줄을 그리면 오롯이 그려질 것만 같이 투명한 피부색의 팔이다. 밤이 되면 더욱 이질적으로 보이는 모습 때문에, 밤을 배경으로 화보도 몇을 찍었었지. 그 화보 속에서의 리츠는 정말 인외의 존재로 보였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하이얀 달, 달빛에 반짝거리는 것만 같은 살결과 렌즈를 응시하는 듯 더 먼 곳을 응시하는 듯 묘했던 붉은 시선, 검푸른 바다. 그 모든 것이 사쿠마 리츠는 인간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 좋아하는 화보는 아니었음에도, 마오는 괜히 울컥해서 자신을 안고 있는 팔을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마-군, 심술쟁이야…….”
작은 웅얼거림이 들렸다. 자신의 등에 얼굴을 파묻고 있어 목 근처를 나다니는 숨결이 간지럽다. 싸늘하게 느껴질 법도 한 가을밤이지만, 두 사람이 붙어 잠을 청하기에는 조금 덥다. 마오가 몸을 돌렸다. 부스스하게 얼굴을 찡그리던 리츠가 깜박깜박, 제대로 눈을 떴다. 어둠 속에서도 붉은 달이 빛나고 있었다. 원체 밤에 잠이 없는 아이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두 눈이 빛날 필요가 있는 걸까. 마오는 의문을 살포시 접고서는 입을 열었다. 마음속에 오래 묵혀두던 이야기, 였다.
“리츠는, 자라지 않아?”
“…….”
리츠가 눈을 깊게 감았다가 떴다. 갑작스레 던져진 질문의 맥락을 파악하기 위함이었으나 마오의 머릿속과 마음속에서만 오래 머물러 있던 이야기인 만큼 특별한 맥락은 떠오르지 않는 듯, 리츠는 결국 미간을 살풋 좁혔다. 이것도 어렸던 날과 다를 바가 없는 표정이다. 나는 변했는데, 리츠는 변하지 않는구나. 마오가 자신의 머리를 다시 한 번 정리했다.
리츠가 마오를 바라보았다. 체념인지 원망인지 모를 감정을 두 눈에 담고 무엇인가를 말하려던 리츠는 마오의 얼굴이 울기 직전이었음을 알아채버렸다. 리츠가 어떤 원망도, 불만도, 화도 낼 수 없게 만드는 얼굴. 리츠가 표정을 풀었다. 마오가 말하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으리라. 실없는 질문만 늘어놓으며 자신을 원망하는 건, 마오답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응.”
리츠는, 마오가 가장 듣고 싶지 않던 대답을 간결하고도 쉽게 내놓았다.
“나는 죽지 않아. 늙지도 않아.”
마오가 얼굴을 찌푸렸다.
“흡혈귀니까. 지금까지 말했잖아.”
어린애에게 조곤조곤 설명하듯 읊조리는 리츠의 목소리가 귓가에 내려앉았다. 나비처럼 가벼운 움직임인데 왜 이리 무겁게만 느껴지는지. 마오가 눈을 내리깔았다. 천천히, 말을 골라내야 했다. 갑자기 왜 이런 말을 꺼냈는지. 그래서 자신은, 인간인 이사라 마오는 어떤 감정인지.
“리츠가 죽지 않으면 결국, 리츠는 다시 혼자가 되는 거잖아?”
“응.”
“내가 아니라, 리츠 주변의 모두가 다 죽고 나면 리츠는 혼자가 되니까.”
“응.”
“리츠를 처음 집 밖으로 끌어낸 건 나니까, 나는…….”
마오가 입술을 씹었다. 이불 밖으로 나와 있던 손으로 이불을 움켜잡은 마오는 말을 맺었다.
“미안.”
리츠가 눈을 깜박였다.
“무책임하게 죽는 거니까, 마음이 별로네.”
마오가 말끝을 흐렸다.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이라기보다는 입속에서의 중얼거림과 비슷했지만 리츠에게는 들렸으리라. 어떤 표정을 지을지 몰라, 마오는 예의 그 표정-눈썹을 찌푸리고 어렵게 웃어 보이는-을 짓고는 입을 다물었다. 리츠가 가만히 눈을 깜박이다가, 푸스스 웃음소리를 흘렸다. 작은 웃음이었다.
“마-군은 너무 상냥하다니까.”
그 상냥함이 자신에게 손을 뻗게 했다. 내밀어진 손이 어떤 온기를 주었는지는 예상하지 못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겠지. 외톨이였던 자신이 어떤 세상을 보고, 긴 생애에 처음인 감정들을 느꼈다고 하면 믿을까. 저 상냥한 아이가 끌어안은 미안함과 죄책감이 조금은 덜어질까.
“나는 당연히 외톨이가 될 거야.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 남아있는 건, 형님 정도일까.”
리츠가 마오의 남은 손을 잡았다. 따스했다. 모습은 변해도, 이 온기는 언제나 다정하게 자신을 받아주고는 했다.
“하지만, 한 번도 빛을 못 보고 외톨이로 남아있는 것보다는 마-군을 만나고 이렇게 지낼 수 있어서 난 더 행복해. 먼 미래에서도 그렇게 생각할 거야.”
리츠가 입꼬리를 잡아당겨 웃었다. 두 눈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마오가 미간을 좁혔다. 리츠에게 있어서 자신과 함께하는 시간은 얼마의 순간일까. 리츠의 말대로 죽지 않고 영원을 살아간다면, 영원을 살아가는 존재에게 80년이란 어떤 찰나일지.
“절대 후회하지 않아. 한 번도, 마-군의 손을 잡은 걸 후회하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정말로 장담할 수 있어? 그렇게 묻기에는 리츠의 눈빛이, 다른 질문을 받지 않았다.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눈빛이다. 마오의 어떤 반론이나 질문도 허가하지 않겠다는.
“오히려, 나랑 만날 때 정말로 외로웠던 건 마-군아냐?”
리츠는 다시 한 번 웃었다. 호선을 그리며 올라가는 입술이 아까보다는 훨씬 가볍고 장난스럽다. 마음을 풀어주려고 하는 구나. 리츠의 미소가 원하는 바를 족히 알고 있기에, 마오는 결국,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난 혼자여도 혼자인 걸 몰랐지만 마-군은 알았고, 그래서 외로웠고.”
반박하려 해도 20년을 함께 곁에서 지내왔다. 리츠의 속내는 그나마 자신이 가장 잘 들여다본다고 자부할 수 있지만 완벽하게 알 수는 없는데, 리츠는 정확하게 감정을 들추고 헤집으면서도 마오를 들쑤시지 않는다. 괜히 억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서일까.
“외로웠던 마-군을 외롭게 하지 않아서, 그래서 다행이야. 마-군의 옆자리를 내가 독점할 수 있어서 충분히, 미래에도 엄청나게 행복할 테니까. 재가 되어도 만족일 정도로.”
여전히 조곤거리는 목소리가 간지럽다.
“그런 거로 미안해하지마. 내 마-군.”
마오의 손을 잡고 있던 손에, 안고 있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아이가 어미의 품을 찾듯 자신의 품에 파고드는 리츠를 바라보던 마오가 눈을 감았다. 언젠가, 미안한 마음은 다시 찾아올 지도 몰랐다. 아주 가까운 시일에 또 다시 생각하고 울적해할 지도 모르지만. 그 때도 리츠는 자신의 곁에서 괜찮다고 다독이고 행복하다 웃어줄 게 분명했기에, 마오는 리츠의 손을 맞잡은 채 희미하게 미소지었다.